어변당 밀양 무안면 문화,유적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던 날, 밀양 무안면의 어변당을 찾았습니다. 논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서자, 오래된 담장과 붉은 기와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은 들녘으로 탁 트여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벼 이삭이 부드럽게 흔들렸습니다. 어변당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의병장인 손덕홍(孫德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재실로, 그의 학문과 충절을 기념하는 공간입니다. 건물의 이름 ‘어변당(御扁堂)’은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편액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만큼 인물의 공적이 높았음을 보여줍니다. 담백한 목조건축과 고요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처음부터 묵직한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1. 무안면에서 어변당으로 향한 길

 

어변당은 밀양시청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 무안면 고라리 마을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어변당’으로 검색하면 정확히 안내되며, 마을회관 옆 길로 진입하면 돌담길이 이어집니다. 입구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6호 어변당’이라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주차는 마을 입구 공터를 이용하면 되고, 도보로 약 2분만 걸으면 도착합니다. 돌담길 옆으로는 감나무와 대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가 서로 부딪히며 은은한 소리를 냅니다. 농촌 마을의 평화로운 정취 속에서 조용히 걸어가다 보면, 고요한 시간의 결이 조금씩 느껴졌습니다. 가까운 거리지만 풍경의 밀도는 깊었습니다.

 

 

2. 건물의 구조와 첫인상

 

어변당의 솟을대문을 지나면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단정한 목조건물이 보입니다. 팔작지붕 아래 붉은 기둥이 곧게 서 있고, 기단 위의 돌이 세월에 닳아 매끈했습니다. 중앙에는 ‘御扁堂’이라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으며, 글씨의 획마다 단단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내부는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장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건물 뒤편에는 작은 후정이 있고, 둘레에는 낮은 담장이 둘러져 있습니다. 꾸밈이 거의 없는 단정한 형태였지만, 목재의 결과 비례감에서 오랜 세월 다듬어진 고요한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지붕을 스치며 나무 틈새로 들어오자, 공간 전체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듯했습니다.

 

 

3. 어변당의 역사와 의미

 

어변당은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손덕홍(1600~1661)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는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으며, 평소 학문과 예의에 엄격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금이 그의 충절을 높이 평가해 ‘어변당’이라는 당호를 하사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의 건물은 18세기 후손들에 의해 중건된 것으로,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건물 안쪽에는 손덕홍 선생의 위패와 관련 유물 사진, 그리고 어변당의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문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한 재실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신과 지역의 충절을 함께 기리는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 뜻이 변하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4.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풍경

 

어변당은 평야 한가운데 낮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건물 앞마당에 서면 멀리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바람이 부는 방향마다 벼 이삭이 물결처럼 흔들립니다. 담장 옆에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서 있어 그늘을 만들고,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드문드문 떨어졌습니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공간이 마치 멈춰 있는 듯했습니다. 마루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나무 사이로 지나가며 흙냄새와 풀내음이 함께 섞여 들어왔습니다. 봄에는 매화가 피고, 여름에는 푸른 논이 물결치며, 가을에는 황금빛 들판이 배경을 이루어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합니다. 자연과 건축이 조용히 대화하는 장소였습니다.

 

 

5. 인근에서 함께 둘러볼 명소

 

어변당을 둘러본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사명대사유적지’를 방문했습니다. 불교 문화와 의병 정신이 함께 느껴지는 곳으로, 어변당과 함께 보면 조선의 의리정신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밀양표충사’로 이동해 산 속의 고요한 사찰을 거닐었고, 점심은 무안면 시장 근처의 ‘무안식당’에서 재첩국과 돼지국밥을 맛보았습니다. 오후에는 ‘밀양댐전망대’에 들러 호수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를 즐겼습니다. 어변당, 표충사, 유적지를 잇는 코스는 밀양의 역사와 자연을 한날에 모두 느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여정이었습니다. 고요함과 장엄함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6. 방문 시 알아두면 좋은 점

 

어변당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마을 입구 공터에 차량을 주차하고 걸어 들어가야 하며, 도보 거리는 약 2분 정도입니다. 내부 마루는 신발을 벗고 오를 수 있으며, 음식물 반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름에는 햇살이 강하므로 모자나 물을 준비하면 좋고, 겨울에는 바람이 세기 때문에 방한복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오전 시간에는 햇빛이 건물 정면을 비추어 사진이 가장 잘 나오며, 오후에는 석양빛이 담장을 물들입니다. 조용히 머물며 풍경을 감상하거나, 잠시 앉아 바람을 느끼기 좋은 장소입니다. 안내문에는 손덕홍 선생의 생애와 업적이 정리되어 있어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무리

 

어변당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과 품격이 깊은 공간이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며 나무기둥을 살짝 울릴 때마다 세월의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흙과 돌, 그리고 나무가 함께 세운 이 작은 재실은 조선의 충절과 예의의 상징으로 여전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마루에 앉아 멀리 들판을 바라보니, 고요함 속에서도 강인함이 느껴졌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이름과 뜻이 이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봄, 매화가 피는 시기에 다시 찾아 생동감 있는 풍경 속에서 어변당의 또 다른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이곳은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밀양의 정신과 역사를 지켜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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